
브랜드는 단순한 로고나 상표가 아닙니다. 소비자가 '왜 이 브랜드를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브랜드로 성립됩니다. 글로우 서울 CMO 허준 브랜딩 디렉터의 통찰을 통해 현대 브랜딩 전략의 핵심을 살펴봅니다.
브랜드 정체성: '왜(Why)'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브랜딩 디렉터 허준은 브랜딩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한 것으로 브랜드의 정체성과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하는 일을 꼽습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단 하나의 질문, 바로 '왜(Why)'입니다. 소비자들은 항상 브랜드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왜 사야 되는지, 왜 소비해야 되는지. 이 왜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브랜드는 절대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핵심 철학입니다.
나이키를 예로 들면, 나이키 마크 하나를 보고 브랜딩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나이키 마크가 왜 탄생했는지, 그리고 'Just do it'이라는 슬로건을 통해 나이키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징이 있고, 그것을 오랫동안 일관되게 지켜왔기 때문에 멋있는 브랜드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마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뢰를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그 서사를 만들어야 하고, 그것을 일관되게 지켜와야 합니다.
소비자의 구매 동기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립밤 하나를 살 때 '천 원이어서, 싸서'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소비자는 이 립밤이 어떤 향이 나고, 어떤 브랜드 스토리가 있으며, 이것을 사면 불우한 사람들에게 기부가 된다거나 환경에 도움이 되는 명확한 아이덴티티에 열광합니다. 정체성과 아이덴티티가 없는 것은 브랜드가 아니라 그냥 상표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이 맥락에서 더욱 설득력을 가집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정체성과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하는 것'과 '처음부터 완벽하게 갖추는 것'은 다릅니다. 많은 초기 브랜드들이 아이덴티티를 정립하지 못한 채 출발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방향성을 가지고 소비자와의 관계 속에서 그 정체성을 점진적으로 구체화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브랜드가 성장하면서 더 정교해질 수 있습니다. 다만 그 핵심 방향 자체가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아이덴티티는 유동적으로 발전할 수 있지만, 그 뿌리에 해당하는 브랜드의 존재 이유만큼은 일관되게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성 마케팅: 소비자의 경험이 브랜드를 살아있게 만든다
허준 디렉터는 브랜딩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진정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를 연애에 많이 빗댑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진정성 있게 계속 고백을 해야 하고, 연애가 시작됐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진정성 있게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두드려야 상대방의 마음은 열릴 것이고, 그 마음을 얻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그 마음을 유지해 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것이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진정성의 핵심에는 소비자의 경험이 있습니다. 글로우 서울에서 운영하는 카페 브랜드 호우주의보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호우주의보는 1시간에 한 번씩 비를 내려주는 퍼포먼스를 운영합니다. 소비자가 1시간 이상 공간에 머물게 하기 위해, 단순히 시끄러운 음악이나 화려한 연출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검은 모래와 커피콩을 간 잔해를 섞어 커피향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게임을 심어놓고, 쇼핑백에 비 오는 날의 차분한 향을 뿌려 입장하게 하며, 2층 카드 게임 섹션에서 승리한 소비자에게는 커피콩이 들어가는 향기 나는 샤샤를 선물해 종이백에 담아 가져가게 했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 그 종이백 안에서 자연스럽게 향과 커피향이 섞이며 호우주의보를 연상시킬 수 있는 무드를 집까지 가져가게 기획한 것입니다.
행사는 오전 4시부터 9시까지 진행됐고, 참가자들은 그 시간 내내 게임을 하고, 비 내리는 퍼포먼스를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고, 공간을 충분히 경험했습니다. 이처럼 브랜드가 설계한 '경험'은 소비자의 기억 속에 브랜드를 각인시키고, 앞으로의 소비 기회를 자연스럽게 열어줍니다.
전 회사 GFGF에서 노티드 박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설렘을 박스 자체에 담고 싶었다는 발상은, 단순한 패키징을 넘어 그 박스를 '선물할 수 있는 마음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승화시켰습니다. 노티드 박스가 하나의 상품이 아니라 행복을 전달하는 선물로 자리 잡은 것은 그 진정성이 소비자에게 통한 결과입니다.
진정성 마케팅은 SNS 인플루언서 전략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팔로워가 3~400명밖에 안 되는 패션 기자라 하더라도, 그 팔로워들이 모두 10만 팔로워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수치가 아닌 잠재적 영향력을 보고 배팅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진심으로 매장에서 소비하고 자연스럽게 공유할 때 그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됩니다. 요즘 소비자들은 광고와 진짜 경험을 너무도 명확하게 구분해냅니다. 진정성만이 그 경계를 넘을 수 있습니다.
콜라보레이션 전략: 두 브랜드가 만나 새로운 서사를 만들다
콜라보레이션은 브랜드와 브랜드가 만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입니다. 허준 디렉터는 콜라보를 '팬에게 주는 헌정사'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콜라보를 한몫 단단히 챙기겠다는 발상으로 접근하는 브랜드는 위험하며, '콜라보로 장사를 한다'는 개념이 아닌 '고객 감사제' 같은 느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진행했던 콜라보 사례 중 베스트로 꼽는 것은 노티드와 무신사의 협업입니다. 무신사는 온라인 기반의 회사로, 오프라인에서 사람들과의 접점을 만들고자 했고, 노티드는 오프라인 매장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더 광범위하게 높이고 싶었습니다. 이 두 니즈가 맞물리며 협업이 성사됐습니다.
그러나 진짜 이야기는 스토리텔링에 있습니다. 무신사는 블랙 컬러, 노티드는 옐로우 컬러로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고민하던 중 검정색과 노란색의 범블비 티셔츠를 입고 있던 허준 디렉터의 눈에 순간 '꿀벌'이라는 컨셉이 떠올랐습니다. 노티드의 디저트는 꿀이 들어가 달콤하고 '허니'라고 부르는 아이덴티티가 있었습니다. 꿀벌이라는 연결 고리가 두 브랜드를 하나의 서사로 묶어낸 것입니다.
이후 출시된 콜라보 박스는 검정색 바탕에 노란색 폰트로 구성됐고, 매장 역시 검정과 옐로우 컬러, 'B'라는 컨셉으로 꾸며졌습니다. 실제 도넛에도 꿀이 들어간 크림을 채운 블랙 시트에 옐로우 크림을 넣는 제품이 출시됐습니다. 비주얼부터 제품까지 하나의 스토리로 관통한 것입니다. 더불어 무신사의 옥외광고에 노티드 브랜드가 게재되며, 연예인부터 일반인, 기업 회장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 로고를 접하게 됐습니다.
이 사례는 콜라보레이션의 이상적인 공식을 잘 보여줍니다. 잠재적 고객들에게는 기대치를 높이고, 기존 고객들에게는 재미와 새로움을 선사해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를 강화하는 것. 이것이 콜라보가 단순한 마케팅 이벤트가 아니라 브랜드의 서사를 풍부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는 이유입니다.
한편, '유행을 쫓기보다 유행을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에 대해서는 한 가지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합니다. 유행을 창조하는 것은 강력하지만, 초기 단계의 브랜드에게는 막대한 리스크가 따릅니다. 시장의 기존 트렌드를 기민하게 읽고 그 위에 브랜드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얹어내는 '영리한 편승' 역시 강력한 성장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유행을 선도하느냐 편승하느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브랜드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뚝심과 시장을 향한 유연한 대처 사이의 균형 감각입니다.
브랜드는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살아있는 존재가 됩니다. 허준 디렉터의 통찰처럼, 진정성과 일관된 아이덴티티가 브랜딩의 뿌리입니다. 동시에 브랜드 철학의 뚝심과 시장을 향한 유연한 대처, 이 두 가지의 균형 감각을 갖추는 것이 현대 브랜딩의 진정한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dsGqjjYq7bY&list=LL&index=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