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모의 성장만 좇아온 분들이라면, 광고 전문가 이근상 님의 작은 브랜드 철학이 뼛속까지 닿을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걸 특별하게 하고 있는데 왜 안 되죠?"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이 이야기는, 브랜드의 본질을 다시 묻게 만듭니다.
고객과 라포 형성 — 공급자 시선을 버려야 브랜드가 산다
이근상 님은 라포(rapport)를 "너도 그렇게 생각해?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라는 감각으로 설명합니다. 단순한 공감대가 아니라, 주파수가 맞아 떨어지는 순간의 감각입니다. 이 개념은 작은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붙잡아야 할 핵심 원리입니다.
20세기 광고 산업은 철저히 공급자 중심이었습니다. 대기업이 막대한 광고비를 투입해 텔레비전이라는 일방통행 매체로 메시지를 쏘아 보내면, 소비자는 수동적으로 수신했습니다. 당시에는 마켓 세그멘테이션 전략으로 시장을 몇 개의 큰 브랜드가 나눠 가졌고, 그 구도 안에서 20~30%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이 성공의 공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한 카테고리에서 경쟁하는 브랜드의 숫자가 수십 개, 수백 개에 달하는 시대입니다. 소비자의 소비 지능은 비약적으로 높아졌고, 허장성세나 과장된 포장은 오히려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인터넷의 보급은 누구든 좋은 아이디어와 본질이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고 알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월 200~300만 원의 소셜 미디어 운영만으로도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자기 브랜드를 충분히 알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 맥락에서 라포 형성은 전략적 기술이 아니라 진정성의 산물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옳다고 믿는 것, 내가 사회에 의미 있다고 확신하는 것을 진정성 있게 표현했을 때, 반대편 어딘가에 "나도 그 생각 했는데"라며 손드는 사람들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요즘것들의 사생활이라는 채널이 7년간 꾸준히 팬을 모은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진짜 궁금한 것을 진짜 탐구했기 때문에, 같은 질문을 품은 시청자들과 라포가 형성된 것입니다.
마케팅이나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이 원리는 직접적으로 적용됩니다. GA4 데이터가 보여주는 트래픽 수치, 전환율, 팔로워 숫자 너머에 진짜 질문이 있습니다. "이 브랜드를 보는 사람이 '나도 이 생각을 하고 있었어'라고 느끼는가?" 공급자의 시선으로 설계된 콘텐츠와 고객 입장에서 울림을 주는 콘텐츠는 출발점 자체가 다릅니다. 작은 브랜드일수록, 라포는 광고비로 살 수 없고 오직 진정성으로만 쌓을 수 있습니다.
깊이의 성장 — 크기를 쫓다 잃어버린 브랜드의 핵심
이근상 님은 작은 브랜드의 성장 패러다임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예전이 크기의 성장이었다면, 이제는 깊이의 성장." 이 말은 단순한 격언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 작은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한 현실적인 전략입니다.
많은 작은 브랜드가 1차 성장을 이룬 뒤 정체기에 들어서면 공통된 오류를 범합니다. "이 원칙을 깨야지 성장하지. 이 안에서는 절대로 더 커나갈 수 없어"라는 생각으로 자기 브랜드의 핵심 DNA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파버 카스텔은 수백 년간 연필이라는 본질을 지켰고, 시마노는 자전거 부품이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나려다 돌아왔으며, 일본의 가메마넨 안경은 단 하나의 스타일 철학으로 세계적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인도의 타라북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을 만들겠다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세계인이 언급하는 출판사가 되었습니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외연의 확장 대신 본질의 심화를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깊이 파고들수록 내공이 생기고, 그 내공은 원칙을 깨뜨리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새로운 일들을 보이게 만듭니다.
규모의 성장에 집착했던 경험을 가진 브랜드 운영자 입장에서 이 대목은 특히 뼈아픕니다. 더 많은 팔로워, 더 높은 매출, 더 넓은 카테고리 확장을 목표로 삼는 순간, 브랜드가 처음 1차 성장을 이뤄낸 핵심이 무엇이었는지를 잊기 시작합니다. 브랜딩이란 멋진 CI와 로고, 슬로건을 갖추는 작업이 아니라,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핵심이 무엇이었나"를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바라보는 작업입니다.
비상업적 태도에 관한 노트북 판매상 이야기와 미국 자동차 판매왕 이야기도 같은 맥락입니다. 자기를 자동차 딜러가 아닌 커뮤니티 내 자동차 컨설턴트로 정의했던 그 판매왕은, 비상업적 태도를 유지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장 많은 차를 팔았습니다. 팔아야 할 상품이 아닌, 내가 그것을 통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깊이의 성장이 가져다주는 진짜 힘입니다.
대체 불가능한 본질 — "특별함"의 기준을 고객 입장에서 다시 묻다
이근상 님의 마지막 조언은 가장 날카롭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지만 특별한 것을 해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브랜드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내가 좋아하는 걸 특별하게 하고 있는데 왜 안 되죠?"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누가 생각했을 때 특별한가'입니다.
잘 안 되는 식당에서 음식을 하는 분이 "내 건 정말 특별해"라고 말할 때, 고객 입장에서는 하나도 특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자기 시선과 고객 시선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이근상 님은 이를 바둑판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내 쪽에서 판을 바라보는 것과 상대방 쪽에서 판을 바라보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판을 뒤집어서, 고객의 자리에 앉아 "이게 정말 상대방 입장에서도 특별한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대체 불가능성이라는 기준도 중요합니다. 손흥민의 자리에 들어가고 싶다면 손흥민이 못 하는 것을 해야 합니다. 김민재 비슷하게 한다고 해서 주전에 껴줄 이유가 없습니다. 나만의 존재 이유, 즉 우주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나만의 자리를 찾는 것이 특별함의 정의입니다. 이것은 천재적 재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충분히 노력으로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러나 반드시 고객 입장에서 검증된 특별함이어야 합니다.
브랜드의 입장에서 이 질문은 더욱 실질적으로 다가옵니다. GA4 데이터가 보여주는 숫자 이면에 있는 진짜 팬이 누구인지, 그들이 이 브랜드를 통해 무엇을 얻고 있는지, 그리고 경쟁 브랜드 수백 개 가운데 이 브랜드만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객의 언어로 다시 정의해야 합니다. 그 정의가 내 확신과 일치할 때, 비로소 라포가 생기고 진짜 팬이 생기며, 깊이의 성장이 시작됩니다.
규모의 성장에 집착했던 브랜드 운영자로서, 이근상 님의 메시지는 방향을 다시 묻게 만드는 질문이었습니다. 공급자 시선이 아닌 고객 입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라포를 쌓고, 본질을 잃지 않는 깊이의 성장을 택하는 것. 그것이 작은 브랜드가 우주의 흔적을 남기는 유일한 길임을 이 대화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말해줍니다.
[출처]
요즘것들의 사생활 — 이근상 작은 브랜드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_DdGi1wjq8Y